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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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음반제작자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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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을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위 영상과 인터뷰 내용은 동일합니다.
회사를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 작게나마 보증금을 마련해서 망원동에 있는 한 지하 사무실을 얻게 되었습니다. 계단 내려가는 곳 바로 아래가 녹음 부스였는데 건물에 누군가 계단을 걸어가면 “뚜벅뚜벅” 소리가 같이 녹음되어서 항상 녹음을 중단했던 이제는 즐거운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폴킴과 '비'를 녹음해 많은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1.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뉴런뮤직의 박진우입니다.
2. 뮤지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처음에는) 특별하게 큰 활동을 하진 않았고요. 인터넷에 음악을 올리는 일을 하다가 조금 주목을 받아서 당시 한국에서 큰 음반기획사였던 서울음반에 러브콜을 받아 앨범을 한 장 내게 되었고요. 학업과 꿈 둘 중을 고민하다 결국에는 '이별후애'란 곡으로 한국에 나왔습니다. 큰 결정이라면 큰 결정인데 사실 와서 안 되면 이제 진짜 학업에 열중해야겠다는 심정도 있었고 당시 나이가 어리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음악을 한다고 학교 휴학을 자주 했어요. 그래서 이대로는 둘 다 제대로 못 하겠단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도전을 해보고 안 되면 깔끔하게 접어야겠다,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나왔습니다.3. 기획사(레이블)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했던 음악활동이랑은 조금 방향이 달랐어요. 아무래도 제가 대학까지 포기하고 나왔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지금 돈도 못 벌고 있는 이 상황이 뭔가 나왔을 때 의지와 결심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획사에 들어가지 말고 스스로 한번 회사를 차려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다 올리고 다 발매해보자 이렇게 시작된 회사입니다.
4. 음반제작자와 프로듀서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음반을 만들 때) 송 프로듀서 (Song Producer)가 있고, 앨범 프로듀서(Album Producer)가 있고 또 Executive Producer라고 제작자가 있습니다. 송 프로듀서 (Song Producer)는 한 곡 한 곡 완성하는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고요. 연주자도 섭외하고 녹음실도 섭외하고 또 좋은 사운드가 나올 수 있도록 믹싱 스튜디오도 섭외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곡들이 다 모였을 때 또 어떻게 하나의 앨범으로 만들어질지 그 일을 하는 것이 앨범 프로듀서 (Album Producer)입니다. 앨범 프로듀서 (Album Producer)는 곡들을 수집한다고 하죠. 좋은 곡들 이 가수에 가장 맞는 곡들을 찾아내는 일도 하고 또 앨범을 어떻게 또 시각적으로 표현할지 재킷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뮤직비디오나 뭐 많은 일을 관여하게 되고요. 여기서 Executive Producer는 그 프로듀서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원을 지원하고 또 함께 결정하고 어떤 것들을 진행시킬지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5. 요즘 음반 업계의 현황에 대해 알려주세요
인디 가수라 해서 전혀 퀄리티가 떨어지는 영상이나 음악을 만들지 않습니다. 집에서 다 녹음하고 자기 장비로 촬영을 해도 정말 메이저 못지않은 퀄리티가 나올 수 있는 시대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굳이 꼭 큰 회사에 있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어요. 그게 현황인 것 같습니다.
6. 대중의 반응이 바로 오는 일이라 부담이 되지는 않나요?
누구나 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저희가 아무리 좋다 해도 아티스트가 불안해 할 때도 있고, 또 아티스트가 좋다고 하지만 저희가 더 잘 만들어보자든지 아니면 타이틀곡은 이게 나을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줍니다. 같이 서로 의견을 많이 나누긴 하는데 결과에 따라서 조금 부담은 많이 되죠. “좋다 믿는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시는데, 그만큼 결과가 안 따라줬을 때는 왠지 제 책임 같기도 하고 괜히 미안하기도 하죠.
7.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폴 킴이 한 번씩 미국에 가서 작업을 했었어요.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미국시간은 낮쯤이겠죠. 제가 새벽에 자려고 하는데 마지막 톡이 딱 온 거예요. 핸드폰으로 바로 (데모곡을) 녹음해서 온 톡인데 듣자마자 저는 그냥 한국 빨리 와라 더 이상 작업 안 해도 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고, 녹음할 때도 그렇고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도 그렇고 모든 것들이 너무 딱 퍼즐 맞춰지듯이 원했던 대로 완성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이 곡은 조금 기대해볼만 하다 생각했죠. 저희 회사로선 처음으로 차트에 높이 올라간 곡이었어요. 열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쯤, (발매 후) 열두 시 차트까지만 지켜봐야지 이랬는데 딱 열두 시 차트 1위가 된 거예요. 저도 살짝 눈물을 훔쳤죠. 펑펑 울진 않았지만…
8. 보람을 느낌 때는 언제인가요?
보람 있는 순간들은 너무 많은데요. 엄청나게 큰 보람이랄 건 없지만 소소하게 자주 느끼고 있어요. 저희가 봤을 땐 그래도 아직 많이 안 알려졌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딘가에 갔을 때 팬이라면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뭔가 자식 키운 것처럼 되게 뿌듯하죠.
9.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코로나 시대가 오다 보니 저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또 어떻게 보면 대면이었고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같이 즐기는 것이었는데 계획하고 사실 취소된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그럼에도 저희는 단단한 믿음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계속 꾸준히 나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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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청년창업지원가
창직, 즐길 수 있고 잘 하는 것을 찾아라
김기선 | 서울산업진흥원(SBA) 희망설계재능기부연구소 컨설턴트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 주시지요.
현재 서울산업진흥원, 동그라미 재단 등에서 청년창업에 대한 컨설팅,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코칭과 상담을 하고 있고 디자인연구소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디자인 관련 컨설팅업무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기업들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서울시 사업인 ‘프로보노’에도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고 농촌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도시인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농촌 주민들은 관광사업의 수익을 거두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모꼬지마을기업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건강발효음료에도 관심이 많이 생겨 이와 관련한 마케팅과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창직이전에 어떤 경력이 있으셨는지요?
저는 대기업 디자인연구소에서 30년간 일했었습니다. 단순히 제품디자인에 국한된 일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관련한 마케팅, 사업계획서 작성까지 아우르는 일을 했었지요. 디자인 특성상 창의력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고, 여러 아이디어들이 사업으로 실제 활동으로 구체화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회사를 퇴직한 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자금이나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계획을 변경하면서 쉽지 않았지요. 하지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성격, 취미를 잘 살릴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그동안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 그리고 긴 시간동안 쌓아온 저의 경험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고 또 저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계속 공부를 하게 되고 또 다른 분들과 지식을 나누고 어느 순간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졌습니다.창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수익을 크게 내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다른 사람들이 가치를 낮게 보는 경향도 있더군요. 또 많은 시간을 컴퓨터를 통해 작업을 하고 새로운 툴을 익히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늘 경청하고 나를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한발 다가서고 배려하며 자연스럽게 알리는 노력을 하려고 했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항상 배우고 경험해야 발전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요. 또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보다 마음의 부자가 되었다고 다짐하니 저 스스로 일도 재미있고 즐기게 되었습니다. 또 혼자 고민만 하기보다 서울희망설계아카데미, 한국디자인진흥원 등을 통해 관련정보도 꾸준히 얻은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일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경영학을 전공하고 모기업 마케팅 임원을 컨설팅하여 창업에 성공시킨 경우가 있었습니다. 여러 실패를 거듭하다가 창업을 포기하려고 하신 분이었는데 4개월 동안 코칭하여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막연한 기대로 저의 코칭을 잘 따를지도 반신반의했었는데 서로 노력하여 좋은 결과가 있어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또 예전에 제가 해외 사례를 보고 창업아이템으로 한번 해볼까 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어느날 이 아이템을 가지고 저에게 코칭을 받으러 온 분도 무척 기억에 남습니다.창직을 고려중인 분들이 기억해야할 사항은 무엇일까요?
길게는 몇 십년 종사한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경제적 보상만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고요. 중장년층은 그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고,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나만의 기쁨이나 만족보다 더불어 가는 삶의 자세와 귀를 열고 생각한다면 창직의 과정과 결과도 좋으리라고 봅니다. 또 창직을 준비중인 분들 가운데는 정부나 기관의 지원금만을 염두에 두시는 분도 간혹 계시는데 결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디어를 찾아 구체화하고 실현가능성을 고려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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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소셜데이팅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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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이음 ’은 매일 낮 12시 30분, 20~30대 싱글남녀에게 하루에 한 명씩 운명의 짝을 소개해 주는 새로운 컨셉(=소셜데이팅)의 온라인데이팅 서비스입니다. 2010년 세계 최초로 ‘소셜데이팅’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국내에 소셜데이팅 붐을 만들며 지금은 업계 1위로 성장했습니다. 설립 2년 만에 40쌍에 달하는 결혼 커플을 탄생시켜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회원 수는 35만 명, 누적 매칭 성공 건수는 28만 쌍에 이릅니다.
사업아이템의 가치를 인정받아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으며, 제 11회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 제6회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 KOTRA [나는 글로벌 벤처다 2012]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음’ 등장 전까지 국내에는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20~30대)이 신뢰를 가지고 이용할 만한 소개팅의 주도적인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크게 결혼정보시장과 ‘일회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음란성채팅시장으로 양극화된 상황이었죠. 특히 음란성채팅사이트 위주의 국내 온라인데이팅 서비스들은 공통적으로 ‘무제한 회원 검색, 무한정 데이트신청’을 제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 브랜드는 개인정보의 과잉노출과 깔끔하지 못한 구성으로 여성들에게 거부감을 형성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브랜드화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음은 기존에 없던 하루에 한 명이라는 컨셉과 운명을 강조한 스토리텔링, 자신의 취향과 선호도를 TAG(키워드)형태로 입력하는 모바일 최적화 데이터구조, 여성에게 신뢰와 호감을 얻는 인터페이스(검색불가!), Push형 서비스(한 번만 데이터를 입력하면 유저가 할 일은 zero)와 같은 차별점을 통해 런칭할 때부터 지금까지 2년에 걸쳐 온라인데이팅 서비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처음부터 창업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NC소프트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에 같은 뜻을 가진 지인 한 분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파트타임으로 서비스를 개발해주는 친구들 3명의 도움을 받아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 때가 2010년 3월 무렵이었습니다.(이후 2010년 5월에 OBT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사실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직장 입사 초기의 경험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소개팅을 정말 많이 한 편이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장에 들어가니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사람도,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텐데 왜 소개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제대로 없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엔씨소프트 사업팀에 근무하며 해외 서비스 동향을 살펴보던 중 온라인데이팅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또 스마트폰으로 인해 SNS가 급성장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이 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적기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없었으니 무서운 줄 모르고 용기 있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남 서비스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음란성 온라인 채팅 서비스와 결혼정보업체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가볍고 밝은 소개팅’에 대한 온라인 사업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개척해 블루오션에 발을 들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데이팅시장은 4조원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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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채널’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메일, 전화, 문자와 같이 채널이 바뀌면 대화양식이나 대화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채널’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이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커뮤니케이션학부터 미대 미디어 프로그래밍, 정신분석학까지 과나 학점에 상관없이 다양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정보문화학이라는 연합전공을 전공한 것이 지금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게임이나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데 컴퓨터 공학과 친구들이 개발하고 디자인과 친구들이 디자인하고 저는 기획을 맡았습니다. 이때 새로운 채널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음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채널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가진 호기심과 맞닿아 있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음’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만 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언론에도 많이 소개가 되었고 1,000만원이라는 창업자금도 지원받게 되어서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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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퇴사 이후 서울대 동문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회사 사무실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책상 2개, 컴퓨터 2대로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를 포함해 3~4명 정도가 학원 사무실 일부를 빌려 비는 시간에 모여서 일했습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각자에게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로직을 만들고 프로그램화 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시범서비스가 끝나고 유료화를 해야 할 시점인데 주변에서 앞서 프리챌 등 유료화를 시도했다가 주저앉은 예를 들면서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각자 주머니를 털어 일하는데 한계가 왔기 때문에 동시에 투자자도 물색해야 했습니다. 금융가를 돌면서 여러 차례 미팅했고, 한번 실패할 때마다 그들이 지적했던 것, 궁금해 했던 점들을 보강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초기 창업자금은 엔씨소프트를 다니기 전 벤처인들의 모임에서 만난 고영하 ‘고벤처’ 대표의 주선을 통해 9,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했고 사업 중간 중간에 증자를 했습니다.
서비스적으로는 이음이라는 서비스에 대한 구상과 성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프로그램 개발과 데이터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이트 론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서비스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받았던 게 실수였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개발 뿐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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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회원가입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음신국에 입국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자신의 기본정보 입력은 필수이고 이어 이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로필 작성입니다. 필수 키워드는 성격/캐릭터, 취미, 외모, Place, I Like, I Have, I Want 등 7개, 선택 키워드는 출신학교와 직업 2가지입니다.
여기에 회원 검색 자체가 불가능하고 운영자가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푸시형 서비스라는 점도 믿음을 줍니다. 운영자가 하루에 한 명씩 매칭해주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이용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정보가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점이 온라인 데이팅의 위험성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개인 신상이 함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에 기존의 온라인 만남보다 믿을 만합니다. 또 가입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가벼운 만남보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확률도 높아 회원들이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이음은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등록되었고 월 매출은 약 2억 정도입니다 아직 '성공'이라는 마침표를 찍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준은 아닙니다. 이 수준에 오르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이처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목표를 잊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만들어진 게 바로 이음입니다. 그만큼 이음에 대한 기대도 높습니다. 현재 이음의 직원 수는 40명입니다. 정직원 2명, 파트타임 3명으로 다른 회사의 사무실 한편에 책상 몇 개를 빌려서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덩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회원 수 100만 명 정도가 되면 이제 한 단계 뛰어 넘었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음소시어스의 최종 목표가 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장 잘 연결해주는 회사가 되는 것인 만큼 한 단계 성공했다고 여기는 시점은 100만 명을 넘어 섰을 때일 듯합니다.-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 만원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11월말에 정식 런칭을 했는데 런칭 1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 덕분에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금도 유치했습니다.
투자자금 유치의 노하우는 특별히 없습니다. 현재의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아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이런 부분들을 주시하고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것에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업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못해 사이트 런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진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할 때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을 못하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못 박아 뒀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그 때 이후로 개발뿐만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하게 됐습니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사업 현황과 관련된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항상 이런 부분들을 언제나 주시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초기에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우수 중소기업에 주는 ‘벤처투자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또 여성창업 경진대회에 수상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연락을 해왔고 이를 통해 수월하게 기관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약점(경험)을 보완해주는 것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주주 및 고문진입니다.
고영하 고벤처 회장이 주주이자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벤처포럼은 10여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한 회에 300명씩 참석하는 대규모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고벤처포럼을 많이 찾고 있으며 고벤처포럼이 창업 붐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스타트업 기업들에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 등이 절실한데요, 이런 목마름을 채워주는 곳이 바로 고벤처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음 역시 고벤처로부터 단순히 금전적인 투자만 받은 것이 아니었고 인력 소개에서부터 사무실 및 관련업체 담당자 소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는 좋은 분들과의 네트워크 및 정보를 지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창업 초기에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확실히 예전보다 벤처회사를 시작하기 좋은 환경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는데, 결국은 끈기인 것 같아요. 어떤 서비스가 출시하자마자 성공할 확률은 적습니다. 그래서 끈기가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열정은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그 열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끈기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물리학자 리처드파인만과 버진인터랙티브의 리처드브랜슨을 존경합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창직 전선에 들어선 저에게 ‘안락함’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안정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업기획은 물론, 이음만의 문화를 담은 스토리텔링, 서비스를 온라인상에서 구현해내는 유능한 개발자를 찾아 개발자와 함께 밤을 새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까지 어느 것 하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만족감에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채워가고 있죠. 저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음의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현장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분야의 저변을 확대하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꿈은 문화예술분야 사업가로 혹은, 문화, 예술의 정책을 관장하는 수장이 되어 실현시켜낼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건 제가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일상의 삶 속에 예술의 향기를 향유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물론 창직은 고되고 힘듭니다. 대신 그 외에 떨어지는 가치들이 엄청나게 많지요. 주말까지 일 생각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지만, 일반 회사를 다닐 때보다 체감 노동은 오히려 적습니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무실 분위기를 내 뜻대로 활기차게 가져갈 수 있는 그런 행위는 ‘그 자체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크게 성장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딱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꾸준할 것’입니다. 열정과 톡톡 튀는 사고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20대의 매력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은 20대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직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20대는 그 어떤 시기보다 열정과 패기로 뭉쳐있는 나이이고, 그것을 자산으로 창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정에 쉽게 지치지 않고 일을 밀고 나가는 ‘끈기 있는 태도’까지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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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이혼플래너
이병철 | ㈜디보싱 대표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요?
이혼컨설팅을 하 는 이혼플래너(상담사)를 창직 했고,(주)디보싱을 설립하여 이혼컨설팅을 기반으로 이혼.가족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교육. 출판. 콘텐츠 제공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중입니다. 이혼과정에 대한 법률, 심리, 재무, 라이프플랜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컨설팅해주는 일을 하지요. 이혼컨설팅은 간혹 이혼을 조장하는 일이라고 오해도 받지만, 이혼의 과정과 이혼 후에 일어날 일들을 정확히 알게 되면서 이혼을 취소하는 경우가 30퍼센트 이상입니다.이혼플래너 이전에는 어떤 경력이 있으신지요?
대학에서 법률을 전 공하고 대기업입사 후 벤처기업을 창업했다가 도산한 후 법률사무소사무장, 외국계보험회사영업직원, 공인중개사, 저축은행상무, 컨설팅회사대표 등을 지내면서 법률, 재무 등의 지식과 경험을 쌓았습니다. 제 스스로 이혼한 경험이 있어서 인터넷 이혼자 카페를 만들어서 활동하면서, 많은 이혼자들에게 본인의 경험에 기초한 이혼에 관한 심리적인 상담과 법률적인 조언을 봉사형태로 몇 년간 하면서 심리에 관련된 공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혼플래너의 출발은 저의 이혼경험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혼과정에서 너무 힘이 들었고, 그 회복에 몇 년이 걸렸습니다. 이혼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나서 이혼과정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남일같지 않아서 봉사를 시작했고 무료로 상담활동을 하면서 이혼에 대한 제대로된 서비스가 전무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어 현재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이혼문제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이혼으로 돈 을 벌려고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사회적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확신으로 그런 과정을 이겨내면서 주위를 설득하여 많은 우군을 확보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또 상담가, 변호사 등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요.몇 번 주위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시도를 했지만 이혼이라는 아이템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거절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창직은 순수하게 저 스스로의 힘으로 한 것 같구요. 이혼플래너가 신직업으로 선정되면서 몇번의 언론노출을 하게 된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습니다.창직 준비 과정에서 특별히 주의할 점이나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창직은 창 업보다 훨씬 험난한 과 정입니다. 새로운 직업을 만든다는 것은 없던 시장을 새로 만들어야 하므로 오랜 기간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고, 정착을 할 수 있는 시기까지 버틸 수 있는 자금 또한 상당히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또한, 기존의 직업과 차별화에 역점을 두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창직하려는 직업에 대한 정확한 개념정립과 시장성에 대한 파악이 최우선입니다. 유사직군과 어떻게 관계를 정립할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이혼은 사회적으로도 이슈여서 보람을 느끼실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고객들이 저 와 지 속적으로 상 담 후 다시 가정을 회복하거나, 혹은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원만하게 잘 해결되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실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혼플래너의 직업에 대해 아직 모르는 분들이 이혼을 조장하는 회사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초창기에 회사 홈페이지에 비난 글이 쇄도했을 때는 무척 힘들기도 하였습니다.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우선 이혼시장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했던 점,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 인프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당장의 경제적 이익보다는 저와 같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봉사한다는 신념이 결국 창직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도 어느 정도 있었고, 사회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끈기있게 버텨낸 의지력과 실행력도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초기자본을 가지고 시작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지요.창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창직 아이템가운데는 작은 아이디어나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 많습니다.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법률적으로 합법한가를 알아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또 소비자가 과연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있을지를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차별화된 뭔가가 있어야 겠지요. 같은 맥락이지만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안정적인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수요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막연히 아이디어만 가지기 보다는 본인이 창직을 할 수 있는 경험가 역량이 과연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꼭 이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고민해 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