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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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공연기획자 박민선
무대 뒤의 숨은 땀방울
공연기획자 박민선 (CJ E&M 공연사업본부, 본부장)
<사진제공> 박민선뮤지컬, 연극, 발레 등 우리나라의 공연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공연기획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공연기획자는 공연을 기획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출, 안무, 음악, 무대, 조명, 의상, 분장 등 모든 분야를 꿰뚫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공연기획자 박민선은 뮤지컬 킹키부츠, 브로드웨이 42번가, 보디가드 등 우리나라의 굵직한 공연을 진두지휘했다.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숨은 땀방울을 흘렸던 그녀가 공연 기획의 이모저모를 낱낱이 들려주었다.박민선 공연기획자는 학창시절, 다재다능하고 도전정신이 충만한 왈가닥에 공부도 잘 했다고 회고한다. 활달한 성격에 특히 글쓰기를 좋아해 막연하게 기자나 피디 같은 직업을 꿈꾸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문득 연극연출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 틈에서 콤플렉스를 느꼈어요.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죠. 내가 가지고 있었던 내 존재의 크기가 실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2학년 1학기 때는 C 하나 빼고 모두 F학점을 맞을 정도였다. “부끄럽지만 제 과거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들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거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그녀는 졸업 후 연출이 아닌 행정 쪽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다. “97년도에 극단 기획팀에 들어가 6개월은 무급, 6개월은 월 30만원 받는 인턴사원으로 근무했어요.” 그 후 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 홍보팀장, 의정부 음악국 축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그녀는 드디어 기회를 잡게 된다. “동숭 아트센터에 공채로 합격했어요. 동숭아트센터는 그 당시 대학로에서 가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극장이었기 때문에 공연기획자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기획한 소극장 공연이 연달아 매진되면서 업계에서 인정을 받게 되자 제작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서른두 살에, 굉장히 늦은 나이죠. 멀리 길게 가기 위해서는 공연의 메카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시장에 대해서 알아야겠고, 전문가로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오래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사리 2년 만에 런던대학교 문화창조산업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귀국하여 2007년 대형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CJ E&M에 입사, 제작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뮤지컬이나 연극 등 최신의 것들이 나오는 런던에서 다양한 공연을 많이 접했던 경험이 오늘 제가 일을 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고요. 뭐든지 혼자 해결해야 하는 유학생활을 통해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면서 자신감도 생긴 것 같아요.”
입사 후 10년, 이제 박민선 공연기획자는 신규콘텐츠 기획 개발은 물론, 중국, 영국, 일본, 미국과의 공동 제작 및 투자사업을 진행하며 콘서트, 연극, 무용, 뮤지컬 제작을 총괄하는 공연사업본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정말 감사하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오늘의 제 삶에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 것은 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던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공연기획자란 공연의 모든 과정에 개입하여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무슨 공연을 언제,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투자와 대상 관객까지 모든 부분을 총괄한다. “스태프를 구성하고 배우 캐스팅, 홍보, 마케팅, 세일즈 등이 모두 기획일이죠. 짧게는 1년 정도 소요되지만 기획창작물은 4~5년씩도 걸리기도 해요.”
작품과 기획을 총괄하고 다양한 스태프들을 이끌려면 특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공연기획자로서 성공한 그녀는 “우선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존중해줘야 해요. 그리고 우리가 향한 목표지점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면 그들의 최선을 이끌어낼 수 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의사결정을 내려줘야 하죠.”라고 말한다.
기획의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관객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너무 앞서가거나 어려워 관객이 공감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녀는 관객의 입장으로 스태프들을 설득한다. “공연에 대중의 관점을 입혀줘야 하는 자리죠. 뮤지컬과 같은 대중 공연이란 예술가의 자기만족이 아니라 예술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관객들과 공감하고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사진제공> CJ E&M, 킹키부츠 한 장면
특히 뮤지컬은 대중화된 작품들이다. 좋은 뮤지컬은 25년이 되도록 꾸준히 인기를 끈다. “십대부터 육십 대까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오래가죠. 그러려면 인간의 본성을 건드려야 해요. 그 화두를 어떻게 잘 잡는가가 어려운 거 같아요.”
투자나 후원을 받으려면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 역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성공적인 투자를 받기 위해 그녀는 투자자의 성향, 기존의 투자자가 투자해서 성공한 작품, 실패한 작품을 분석해서 접근한다. “배우를 비롯해, 연출가, 아티스트, 투자자한테까지, 저희는 항상 을처럼 산다고 표현을 해요. 모든 사람들에게 저희 입장을 전달해서 그 사람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줘야하니까요.”
공연이 올라간 뒤에는 공연의 퀄리티가 잘 유지되고 있는지 디테일하게 모니터링하고, 현장에서 관객의 의견을 점검 한다. 또한 홍보와 마케팅 이벤트 등 많은 일들도 공연기획자의 몫이다. “기획 업무의 제일 좋은 점은 단 하루도 심심한 날이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는 거예요. 동시에 일에 대해 계속 고민하느라 퇴근 후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는 점이 힘들죠.”
대한민국의 공연 수준은 그동안 놀랍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뮤지컬은 오래전 미국과 영국에서 태동 된 오페라로부터 비롯된 장르이기 때문에 여전히 노하우가 부족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창작물보다는 ‘레미제라블’, ‘노트르담드파리’ 등 영국이나 미국, 유럽 에서 히트한 유명한 작품들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곳에 가서 그들과 함께 전 세계를 상대로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저희가 공동 프로듀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CJ라는 프로듀싱 컴퍼니가 믿을만하다는 걸 인지하고 투자의 기회를 열어주는 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이후에는 굉장히 많은 작품에 대해서 초청이 온다. 킹키부츠도 그렇게 미국과 공동 제작하게 되었다. “킹키부츠는 영국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에 바탕을 둔 영화였습니다. 이후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80년대 팝계의 전설이었던 신디로퍼가 음악을 맡아서 토니상을 받았죠. 아버지와 아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편견을 버린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한국적인 정서에도 맞다고 판단해 공동제작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면서 44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굉장히 기뻤죠.” 잘 될 줄 알았는데 실패한 공연도 있었다. 국내의 작은 소극장 공연 몇 가지가 그랬고, 한번은 해외에서 공동프로듀싱했던 작품들 중에 한 달 반 만에 냉정하게 폐막을 당한 적도 있었다.
박민선 본부장은 다양한 페스티벌에서 인턴으로 출발했다.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그녀처럼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커리어를 쌓아 가는 게 좋다고 말한다. “실제로 직원들 중에 자원봉사로 시작했다가 저희 회사로 들어온 친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공연기획자가 되기 위해 굳이 관련 전공을 할 필요는 없다. 문학이나 경영을 전공해도 괜찮다. 공연만 정말 좋아하다면 오히려 다른 전공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박민선 공연기획자는 요즘 면접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스팩을 갖춘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공연을 평생을 업으로 삼으려면 공연을 정말 좋아해야 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스팩 쌓기보다는 영화, 책, 공연 등을 많이 보고 많이 읽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 물론 공연기획자에게 적합한 성향은 따로 있다. “기획은 옆으로 펼치는 사람이어야 해요. 디테일하게 나무 하나하나를 보기 보다는 전체 숲을 빨리 보는 사람이 적합하죠.”
그녀는 공연장에서 무대를 보지 않고 자꾸 객석을 살핀다. “관객에 대해 연구하지 않으면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버릇 같아요. 앞으로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여러분도 공연에 누가 왔는지, 내가 재밌어하는 만큼 관객이 많을 것인지 아닌지 꼭 예측해보세요. 예측을 한 다음에 티켓 예매사이트 들어가면 그 공연이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죠. 내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자꾸 비교해보는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연기획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다. 최후에는 제작자가 되겠지만 마케터도 있고 홍보 담당도 있고 프로덕션 매니저도 있는데 각각 조금 다른 자질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공통으로 정말 중요하다고 꼽는다.
“공연기획자는 수십 명, 수백 명을 설득하고 리드해야 해요. 그러려면 먼저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함으로 신뢰감을 줘야 합니다. 두 번째는 당장 다음 주에 공연인데 공연이 못 올라갈 것 같은 위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이 있는 분들이 좋을 것 같고요. 세 번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공연기획자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굉장히 다양한 전문가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꿈도 창작 뮤지컬을 성공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25년 동안 할머니와 손녀가 같이 보고 감동받을 수 있는 ‘라이온킹’처럼 아름다움과 철학과 감동과 재미가 있는 창작 작품을 꼭 만들고 싶어요. 그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도 받고 앞으로 30년 후에도 오리지널 프로듀서로서 그 작품과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사실 그 순간을 매번 꿈꾸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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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프리마켓기획자
소중한 재래시장을 만드는 기획자
김성규 | 창직아이템 :프리마켓 기획자
프리마켓을 기획하는 일... 어떤 일인지요?
흔히 마켓이라고 하면 마트나 가게를 떠올릴 수 있지요. 제가 생각하는 프리마켓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형 마켓이나 시장입니다. 유럽의 벼룩시장처럼 거리에서 특별한 아이템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곳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장소섭외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곳이 바로 재래시장입니다. 현재 전국에는 1,500여 개의 재래시장이 있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주요 시장만 해도 600~700개에 이릅니다. 최근 재래시장이 현대화되고 하드웨어는 많이 변했지만 소프트웨어는 부족합니다. 재래시장의 상가를 임차하여 그 가게에서 기획전도 열고 이것을 SNS을 통해 홍보해주고, 매출을 올리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저희가 직접 가게를 임차하여 운영할 수도 있고, 혹은 다시 가게를 일시적으로 필요로 하는 분들께 임대해 주는 것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재래시장이 좀 더 활성화되면서 신선한 아이템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에 기여하고 싶습니다.프리마켓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있으신지요.
원래 예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생각해왔던 아이템입니다. 대기업에도 다녔었고 여러 비즈니스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온라인 판매경험도 있었는데 이때 반품물건을 처리하기 위해 프리마켓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도 이베이와 함께 영업하는 온라인몰을 운영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소 생소한 분야여서 구체화시키질 못하다가 창직 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좀 더 아이템을 좁히고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참여한 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래시장분들을 잘 설득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재래시장 안에서 튀는 것에 거부감이 있지는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창직을 위해 그동안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다른 기관의 프리마켓 기획자 과정에 참여하면서 같은 고민과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서울시의 창직 아카데미에 참여한 것도 저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구체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의만 듣는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막상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려니까 어려움이 있더군요. 그래서 다양한 직업을 알고 찾아보고 해외 직업도 찾아 견문을 넓히려고 했습니다. 저희 세대가 알고 있는 직업분야가 제한적이다 보니 창직을 하려해도 영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창직만 추구하다 보면 뭔가 새로워야한다는 것에만 집착하기 쉬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다양한 직업을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향후 계획은 어떠신지요.
우선 서울, 경기를 시작으로 할 예정입니다. 재래시장 기획을 준비하면서 당장은 백화점 꼭대기층을 빌려서도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것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물론 재래시장과 백화점은 구매계층도 다르고 특징도 다르지만, 둘 다 ‘기획’에 승부를 걸려고 하기 때문에 저의 기획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시도나 의도가 좋다는 생각은 들지만 솔직히 프리마켓 운영으로 큰 수익이 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프리마켓 창직자를 키우는 일도 동시에 하려 합니다. 창직 모델을 만드는 것이지요. 현재 U.F.O라는 프리마켓 기획자들이 모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30대부터 50대까지 프리마켓에 관심있는 11명이 모여있습니다.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어떤 사람은 기획에, 어떤 사람은 판매에 관심이 있기도 해서 다양한 관심사를 통해서 시너지도 발휘되고 있습니다.
프리마켓은 기획과 아이템선정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고, 사람들의 타겟에 맞는 아이템을 잘 선정하고 홍보도 잘 해야겠지요.창직을 준비중인 중장년층에게한마디 전하신다면?
나이든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다보니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을 찾으려 다니려고 하고 새로운 것에는 거부감이 있기도 하지요. 또 중장년들은 리스크를 우려해서 의사결정을 하기도 어렵고요. 하지만 창직은 오히려 중장년층에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므로 긴 호흡으로 느긋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발명을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아이템을 골라 고민해보고 시행착오를 하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실패도 좋은 경험이므로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창직을 준비하다보니 사고의 폭이 넓어진 걸 느낍니다. 예전에는 기획아이템을 찾다가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으면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어떻게 나만의 것으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것이 창직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아무래도 본인의 경험과 관련있는 분야에 창직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혹 완전 새로운 분야로 창직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본인의 노하우와 경력을 믿고 그 안에서 창직을 해야 결과물도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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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푸듀케이터
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환경, 건강, 농업, 지역경제 등의 사회적 문제를 식생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식생활 교육 콘텐츠와 커리큘럼을 기획하고 직접 운영하며,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영양, 칼로리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사회적인 다각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게 교육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교육과 캠페인을 말합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외국에서 식문화 운동인 슬로푸드를 배우고 와서 한국에서도 식문화를 바꿔보고자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 소비자의 의식을 개선하는 일이라 깨달았고 그 방법으로 식생활 교육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기존의 국내 방식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즐겁게 식생활의 교육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교육과 캠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음식,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대학 재학 시절 부전공으로 외식산업경영을 선택했고,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는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했어요.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음식과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전공인 통계학보다는 음식과 관련된 분야의 일이 내게 더 잘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학연수를 빙자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갔어요. 외국의 식문화를 직접 살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곳에서 눈길을 끄는 식당이나 카페 등을 돌아다니고 심지어는 무급으로 일도 했습니다. 특색 있는 메뉴와 컨셉을 살필 수 있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여러 나라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귀국해 대학을 졸업하고 중견 외식업체에 취업을 했지만, 이미 외국에서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하고 온 내게 우리나라 외식업계, 특히 대기업이 운영하는 외식업체는 창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때 썬앳푸드라는 외식업체가 눈에 들어왔어요. 건강식품이면서 한국인의 식단에 빠질 수 없는 마늘을 주재료로 삼고 있지만, 메뉴는 외식 트렌드에 맞는 이탈리안 푸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죠.
색다른 시도를 하는 이 기업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온라인을 통해 대표에게 직접 나를 소개하는 내용과 입사를 원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의 적극적인 액션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회사로부터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고, 2년 여간 그곳에서 일했어요. 사실 한 기업의 대표에게 일해보고 싶다고 직접 제안한다는 것이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생각에만 그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해요. 행동하지 않으면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당시 마케팅 부서로 입사한 신입사원이었기에 홍보, 프로모션, 고객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한 경험은 지금 회사를 운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어요. 미디어를 다루는 방법, 홈페이지 관리나 홍보 노하우 등을 깨칠 수 있었죠.
회사에서 2년 정도 일하면서 음식과 관련한 일은 분명 좋아하는 일이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분야지만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습니다. 또, 음식과 관련된 일은 왜 조리, 음식점 경영 정도에 국한되어 있을까. 왜 더 다양한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건강한 음식, 건강한 식문화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를 키워드로 하여 검색하던 중, 슬로푸드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음식을 통해 내 몸뿐 아니라 환경까지 살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슬로푸드 운동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가서 슬로푸드 철학을 기본으로 한 음식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교(미식과학대학)에서 음식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융합한 전혀 새로운 장르의 학문을 접했습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건강한 음식에 대한 가치관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고,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문성을 인정받아 음식전문 취재기자, 리포터 등으로 활동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어요.
또 그간 쌓아둔 인맥을 통해서 강의 요청이 자주 들어왔습니다. 식문화, 식습관, 건강과 식생활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는 거였어요. 이러한 내용은 유학하면서 항상 고민하고 공부했던 터라 자신있게 할 수 있었죠. 문득 이 일이 내가 찾던 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 교육, 좋은 식문화를 통해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찾고 나아가서는 환경을 되살리도록 교육하는 것. 이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면서, 먼 곳까지 가서 치열하게 배우고 온 일이고,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이 일을 시작한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지요. 게다가 아동과 청소년의 비만,부모와 자녀의 대화단절,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지구 등 각종 사회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식생활 교육, 밥상머리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간의 공부를 통해 얻은 결론이었어요. 저는 이 일을 나의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전공을 바꾸고, 미국과 호주, 이탈리아 등에서 공부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야말로 나만의 일을 내 스스로 찾아낸 셈이에요.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현대 식문화에서는 가족들이 모여서 밥을 먹으며 이뤄지던 밥상머리교육의 부재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이 이슈화 되고 있고 편리함과 속도 위주의 식품의 섭취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에 바른 식생활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2011년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학교, 단체에서 식생활이 점점 요구되고 있는데, 이를 진행할 식생활 전문 교육 강사들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관련 인력이 전무한 상황이었죠.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간간히 들어오는 요청에 따라 강의를 하다가 남양주 시청의 제안으로 2년 여간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슬로푸드, 건강한 식습관과 관련한 교육사업과 행사를 기획하는 게 주된 일이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곧 민간 차원에서도 수요가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 창직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 새로운 일을 개척해 나가는 두려움은 당연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렵다고 안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바른 식문화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개인적으로 결정력, 결단력이 있는 편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다보니 바빠지고, 두려움을 느낄 여유도 많지 않았죠.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 확신하는 일에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고 차근차근 일을 완성해 나가는 성향은 일을 완성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동안 음식과 관련된 푸드스타일리스트, 외식업체 마케터, 음식전문리포터 등의 다양한 경력과 경험들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부의 전공은 통계학이었지만, 학부 때부터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외식산업경영을 부전공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석사를 이탈리아 슬로푸드 대학인 미식과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에서 음식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을 통한 음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은 지금하고 있는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문성을 인정받아 음식전문 취재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꾸준히 글을 쓴 것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회사를 홍보하는 데 필요한 보도자료나 회사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 칼럼을 쓰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죠. 푸듀케이터는 내가 1호니까,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푸듀케이터가 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강의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짜는 일 외에 관련 내용으로 책을 쓰고 기고도 하는 직업인이지요. 저는 유학에서 돌아온 후, 앞으로 일을 하려면 스피치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아나운서 과정을 듣기도 했어요.
지금 푸듀케이터로 대중 앞에서 강의를 하고, 한 회사의 대표로 언론이나 미디어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이때 연습하고 단련한 덕분이라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내가 내 일을 찾아 나서기까지 모든 과정들은 ‘단련’이었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가장 힘들었던 것은 회사원으로 일하며 월급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는 것이었죠. 내가 스스로 내 일을 찾아 나서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미래가 핑크빛일지 아닐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것, 선례가 있지 않아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대중들이 전혀 새롭지 않다고 여기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도 분명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과연 식생활문화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줄까? 밥상머리 교육, 미각교육의 필요에 대해 공감해줄까? 이런 생각이 계속되었습니다. - 그러한 난관, 고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일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일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 스스로 찾아내고 선택한 일이니 잘 해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또, 이 일은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마인드콘트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비용을 따져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고 선택을 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능력, 결단력,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중요합니다. -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은 사항이 있다면?
- 세 차례 지원했다가 한 번 기회를 얻었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800만 원의 지원금(활동비, 사업비, 홍보비, 교육컨설팅비)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식문화 교육’이라는 주제가 새로웠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개 음식 분야에 도전하는 분들은 거의 제조업에 머물렀거든요. 검색하다 보면 청년층에게 지원금을 주는 여러 제도가 있는데요, 지원금을 받는 데에는 사업계획서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뛰어나도 사업계획서를 부실하게 작성하면 그 내용이 잘 전달될 수가 없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정보가 있다면?
- 외국의 사례를 많이 수집하여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고, 전화로 문의를 하다 직접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탈리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 어떤 인물, 어떤 기관?
- 인터넷으로 미국 사이트를 검색하다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슬로푸드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면서, 그곳에서 공부할 때에도 국제 슬로푸드협회의 자료나 안내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 창직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자신이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경험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관련 분야에 인맥을 얼마나 형성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 창직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 그 직업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배경과 환경, 사회적으로 필요가 있어야만 일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회에서 문제시 되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내야 합니다. 무작정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일을 매치시켜야 겠죠. 저 같은 경우는 요리가 좋고, 음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와 관련한 사회문제, 사회적 필요를 파악하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였습니다.
마침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인데 왜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을까? 내가 해야겠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겠다’ 이랬던 겁니다. 눈을 넓혀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좋은 직업을 떠올렸다면 그런 사례가 있는지,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합니다. 그리고 그 직업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나 공부들이 어떤 것인지, 그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를 찾아 배우고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 직업을 필요로 할 수요처에 대한 파악과 그것에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환경인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 음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과 경력을 쌓으며 맺어진 인맥과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분야를 공부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직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 이 직업에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찾았고, 조직의 형태가 비영리사단법인이라고 판단하여 사단법인의 형태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풀무원이라는 식품회사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인정하고 관심을 갖고, 사업을 의뢰해 주었습니다. 제가 식생활 교육을 골자로 하는 교육업체를 만들려고 여기 저기 도움을 받을 곳을 알아보던 중, 희망제작소에서 인큐베이팅을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마침 식품회사 풀무원이 희망제작소 쪽에 기업의 사회공헌 측면에서 ‘바른 먹거리 교육’을 하고 싶다고 자문을 구했고, 희망제작소가 중간 역할을 해서 제가 준비하고 있던 ‘푸드 포 체인지’(그때는 ‘푸룻’)가 풀무원의 바른 먹거리 교육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짜 기업이 큰 회사와 함께 실무를 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게다가 기업의 이런 이력도 좋은 홍보거리가 되거든요.- 창직 구체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이 직업이 어떤 역할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남들에게 잘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가 스스로를 푸듀케이터라고 하고 있는데, 한국어로 하자면 ‘식생활교육가’ 정도로 부를 수도 있었지만, 음식과 관련한 모든 영역을 다루며 이를 교육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는 ‘식생활교육가’보다 푸듀케이터가 제한이 없습니다.
식생활교육가는 식생활에 국한된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물론 주된 내용은 그 부분일 수 있지만 더 많은 부분을 다룰 필요가 있고, 저는 그렇게 할 거거든요. 그리고 처음 이 직업을 접하는 사람이라도 직업명만 들으면 음식과 교육, 이 두 분야를 아우르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느끼고,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는 험난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 나갈 의지가 중요합니다.
- 창직의 장점, 매력이 있다면?
-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던 일, 혹은 구체화 되지 않았던 일을 전문직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스스로가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국제 슬로푸드협회의 카를로페트리니 회장입니다. 여러 가지 교육과 캠페인, 이벤트 등으로 소비자의 의식을 개선하고 식문화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명사입니다.
- 평소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 소극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확신하는 일이나 결심한 일은 인내심을 가지고 결과를 만듭니다. 결정한 일은 다시 고민하지 않고 하는 편입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식문화를 개선하여 바른 식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분야에서 전문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여자인 제가 어린 나이에 세 차례나 외국에 나간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기왕이면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음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요리사, 음식점 창업 외에는 없어보였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행동력, 다양한 경험은 창직에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 고민을 많이 하면 실천에 행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직접 부딪쳐보고 좋고 싫음을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기회비용을 잘 따져 포기할 것과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나눈 다음에 결단력 있게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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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수중재활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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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수중재활운동이란 지상과는 다른 물리적 효과를 이용하여 신체적 질환(신경계 질환 및 근골격계 질환, 심장순환계 질환)으로 인한 신체적·기능적 움직임 저하 및 발육지연을 지닌 사람들의 발육발달 및 운동발달을 위해 수중에서 하는 재활운동입니다. 저는 이것을 사업화 하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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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복지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자발적 움직임을 거의 못하는 중증의 근육병(척수성근위축증) 환자와 척수장애 환자에게 수영을 가르치면서 적절한 운동이 이들의 건강 증진과 신체적 기능 향상에 효과적이란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외국문헌을 연구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연구와 체계적 접근 방법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장애에 접근할 수 있는 수중에서의 운동방법을 알기 위해 외국에서 연수과정을 밟으면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재활운동 프로그램과 직접 임상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특수인구 집단(노인, 임산부)과 장애인에 대한 운동재활을 돕는 수중재활운동사라는 전문인력은 물론 이를 양성하는 수중재활운동 전문교육기관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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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재활운동이라고 하면 지상에서 행해지는 운동재활치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수중재활운동이 운동재활을 목적으로 하고있으며, 중요한 가치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면서 장애인의 운동재활을 통해 수중재활운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리고 그 필요성을 전파하였습니다. 이때 전국의 물리치료학과 교수들이 새로운 재활 분야인 수중재활운동에 관심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각 복지관에서도 새로운 재활사업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없었던 수중재활운동에 대한 창직 가능성과 시장성을 파악할 수 있었던 기회였으며, 이를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의 수중재활운동사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사업과 수중재활운동을 필요로 하는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사업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창직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 생각해 보면 수중재활운동을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첫 시도이고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느껴보지 않았습니다. 아마 두려움이 컸다면 시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누구도 이러한 것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선례가 없었고 오로지 선구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이것을 후배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수중재활운동이 자리 잡기를 희망한 마음이 컸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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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체육학을 전공하였고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체육측정평가를 전공하였으며 박사과정에서는 수중재활운동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공학과와는 연관성이 있을 뿐, 이것이 창직을 하는 데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직접적인 임상경험을 하면서 깨달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중재활운동이라는 것은 물리치료의 한 분야이기도 하고,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체육 분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수중재활운동사로서 인체와 관련된 학과를 전공하는 것이 처음 입문하기에는 도움은 많이 됩니다. 본인이 체육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수중운동에 재활이라는 분야를 접목시킬 때 의료보건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학으로 물리치료를 공부했고, 이후에는 물리치료과에서 교수로 일했습니다. 몇 년간의 시간이 흘러서 느낀 것은 수중재활운동 분야는 체육, 물리치료를 전공한 사람이 유리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그러한 난관, 고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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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지금처럼 병원, 복지관, 요양시설 등 수중재활운동을 다루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수중재활운동사로 활동하며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취업보다는 직접 서비스를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수중재활운동 특성상 수영장과 같은 시설이 아닌 특화된 수중재활운동실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에 필요한 시설 건립 자금에 대해 누군가 후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순수 개인의 자금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공사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틀었습니다. 아무런 외부의 도움 없이 이 분야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교육사업이었습니다. 수중재활운동시설을 만들기 1년 전, 전국 투어 세미나 때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강의 요청이 있어 교육사업을 실행했습니다. 이후 서서히 자금이 확보되어 시설 건립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창직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직업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직업군이 차후 각광 받는 직업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수익이 창출되어야 하며, 전문성 있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교육사업은 의미가 있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정보가 있다면?
- 창직 준비 과정은 아닙니다만, 1995년 미국에서 수중운동 관련 연수과정에 참여했을때 저에게 수중운동을 가르쳐준 이가 Igor Brudenko 박사입니다. 그분의 강의를 들은적이 있었는데 다른 강사들과는 다른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정형화된 매뉴얼을 학습하도록 했던 여타 강사들과 달리 Igor Brudenko 박사는 대상자마다 자신의 지식에 근거한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접근하며, 그 타당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이 교훈이 되어 제가 남들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지식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었고, 13년이 흐른 지금까지 저를 지탱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창직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수중재활운동 특성상 수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하루 근무 시간 중 6시간 정도입니다. 평균 34~35도의 수온에서 근무하는 것이 신체적으로 어려운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심장순환계에 건강상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신체에 문제가 없는지 미리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 창직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 창직을 하기 위해서는 수익성 또한 고려해야 합니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제가 임상센터를 개원하였을 때, 전국○○학과대학 교수협의회에서 방문하여 수익성에 대해 질문을 한 일이 있습니다. 이후에 대학에 수중재활운동이라는 비슷한 제목으로 강의가 개설되었습니다. 이는 교수들이 판단했을 때 이 일이 학생들이 졸업 후 하나의 직업으로 삼기에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특강을 나가면 강의 끝에는 “한 달 수입이 어느 정도 입니까?”라는 질문을 매번 받습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기업 간부 연봉과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웬만한 셀러리맨보다는 높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그만한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을 했을 경우에...”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자신의 진실된 노력이 있으면 이러한 직업 특성상 수익성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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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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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의문점에 대해 관련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해야 합니다.
둘째, 남들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합니다.
셋째.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수익에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
항상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에는 많은 정보를 공유 할 수 있는 매체가 많으므로, 설득력이 없다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수중재활 운동사 특성상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객관적인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배우고 공부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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